반도체 주도 랠리 멈춘 '검은 월요일'…외국인 자금 이탈 가속화에 사이드카 발동
국내 금융시장이 미국발 고금리 공포와 중동의 지정학적 불안이라는 대형 복합 악재를 만나 거세게 흔들리고 있다. 사상 최초로 '8,000 코스피' 시대를 열며 거침없는 상승세를 이어가던 국내 증시는 불과 며칠 만에 가파른 조정을 맞이했고, 외환시장의 심리적 마지노선으로 여겨지던 원·달러 환율 1,500원 선마저 다시 무너지며 금융시장 전반에 패닉 확산 우려가 커지는 모양새다.
1. 장중 매도 사이드카 발동…7,200선마저 위태로운 '검은 월요일'
18일 서울 주식시장에서 코스피 지수는 개장 직후부터 가파른 하락세를 보이며 전 거래일 대비 4% 이상 급락했다. 지수는 장중 7,200선 밑으로 밀려나며 투자심리를 급격히 위축시켰다. 장 초반 낙폭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한국거래소는 시장 과열을 진정시키고 유동성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프로그램 매도 호가의 효력을 일시 정지하는 '매도 사이드카'를 발동하기도 했다.
증시 폭락을 주도한 것은 외국인 투자자들의 거센 매도 폭탄이다. 그동안 국내 증시의 부흥을 이끌었던 외국인들은 유가증권시장에서 수천억 원 규모의 매물을 한꺼번에 쏟아내며 지수를 아래로 강하게 끌어내렸다. 반면 개인 투자자들은 떨어지는 칼날을 받아내듯 홀로 순매수에 나서며 분전했으나, 거대한 매크로(거시경제) 압박에 따른 외국인과 기관의 동반 투매를 방어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코스닥 지수 역시 성장주와 바이오주의 동반 약세 속에 4.7%에 달하는 폭락세를 기록하며 1,100선이 힘없이 붕괴되었다.
2. '트리거'가 된 미국 10년물 국채 금리…AI·반도체주 청산 유인
시장 전문가들은 이번 급락의 일차적인 원인으로 미국의 채권 금리 급등을 꼽는다. 지난 주말 미국 10년물 국채 금리가 심리적 임계점으로 여겨지던 4.5%를 돌파하면서 글로벌 기술주 중심의 차익 실현 욕구를 강하게 자극했다는 분석이다.
한지영 키움증권 연구원은 "5월 이후 주요국 증시는 반도체 등 인공지능(AI) 주가 만들어낸 신고가 랠리를 누리면서 매크로와 지정학적 불확실성에 대한 민감도를 낮게 가져갔다"고 짚었다. 이어 "이익 모멘텀 개선 등 기존의 상승 재료가 훼손된 것은 아니지만, 주가 상승 속도 자체가 단기 리스크 요인이 된 상황에서 미국 금리 급등이 맞물려 반도체 비중이 높은 한국과 일본 증시에 단기적인 포지션 청산(매도) 유인을 제공했다"고 설명했다.
이로 인해 국내 증시의 든든한 버팀목이었던 대형 기술주들이 일제히 주저앉았다. 대장주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나란히 약세를 면치 못했고, 현대차(-5.68%), LG에너지솔루션(-4.80%), 삼성전기(-4.75%) 등 시가총액 상위 종목 대부분이 시퍼런 하락 불을 켰다.
3. 외환시장 방어선 붕괴…환율 1,500원 돌파의 나비효과
증시가 무너지는 사이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다시 한번 1,500원 선을 돌파하며 가파르게 치솟았다. 이날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주간 종가 대비 오른 1,501.2원에 개장한 이후, 달러 강세 압력이 지속되면서 1,502원대 안팎에서 불안한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환율이 1,500원 고점을 뚫어낸 것은 중동 전쟁 여파와 미국의 고물가 지표로 달러인덱스가 99선을 돌파했던 지난 폭락 장세 이후 약 한 달 만의 일이다.
원화 약세가 심화되는 배경에는 복합적인 대외 악재가 자리 잡고 있다. 최근 발표된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CPI) 등 인플레이션 지표가 시장 예상치를 웃돌면서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 인하 기대감이 크게 꺾였다. 여기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중동 관련 강경 발언으로 전운이 다시 짙어지며 글로벌 안전자산인 달러화로 유동성이 집중되고 있다. 환율 상승은 국내 증시에 들어와 있는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환차손 위험을 키우기 때문에, '환율 상승 → 외국인 자금 이탈 → 증시 추가 하락'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를 만들고 있다는 지적이다.
4. 향후 전망…변동성 장세 속 '바닥 다지기' 주목
금융투자업계는 당분간 국내 금융시장이 높은 변동성 장세를 이어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미국 국채 금리의 상단이 어디까지 열려있느냐와 강달러 기조의 진정 여부가 향후 코스피 지수의 향방을 가를 핵심 열쇠다. 기업들의 실적 시즌이 마무리 국면에 접어든 만큼, 당분간은 펀더멘털보다 대외 매크로 변수에 의해 지수가 춤을 추는 장세가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다만 시장의 체력 자체가 완전히 무너진 것은 아니라는 신중론도 고개를 들고 있다. 반도체 초호황기에 따른 국내 주요 기업들의 실적 개선세가 여전히 유효한 만큼, 단기 과열에 따른 차익 실현 물량이 소화되고 나면 증시가 다시 완만한 반등이나 바닥 다지기에 나설 수 있다는 분석이다.
외환당국 역시 환율의 급격한 쏠림 현상을 예의주시하며 구두 개입 등 시장 안정화 조치 타이밍을 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환율 1,500원 선 돌파는 수입 물가 상승을 자극해 가뜩이나 불안한 국내 물가를 자극하고 통화 긴축 압박을 키우는 요인"이라며 "외국인의 매도세가 진정되고 외환시장이 안정을 찾기 전까지는 공격적인 저가 매수보다는 현금 비중을 늘리고 리스크 관리에 집중하는 보수적인 접근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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